크리스 마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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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스 마르케는 프랑스의 영화 제작자, 사진 작가, 작가, 저널리스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으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촬영했다. 마르케는 실험적인 스타일과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에세이 영화로 유명하며, 대표작으로는 《환송대》, 《태양 없이》 등이 있다. 그는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작품을 제작했으며, 2012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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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마르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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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크리스티앙 이폴리트 프랑수아 조르주 부슈-빌뇌브 |
| 출생일 | 1921년 7월 29일 |
| 출생지 | 프랑스 뇌이-쉬르-센 |
| 사망일 | 2012년 7월 29일 |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
| 직업 | 영화 감독, 사진가, 언론인, 멀티미디어 예술가 |
| 한국어 표기 | 크리스 마르케 |
| 수상 | |
|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 신인상 1963년 『아름다운 5월』 |
|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카톨릭 미디어 협의회상 1983년 『태양 없이』 |
| 영국 영화 협회 | 서덜랜드 트로피 1983년 『태양 없이』 |
| 주요 작품 | |
| 대표작 | 『라 제테』 |
2. 생애
크리스 마르케는 1921년 7월 29일 프랑스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Christian François Bouche-Villeneuve|크리스티앙 프랑수아 부셰-빌뇌브fra'''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2] 그의 출생지를 둘러싼 여러 설[1][3]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며 "나의 영화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1][4]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철학을 공부했고, 전쟁 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 마키에서 활동하며 '마르케'라는 별명을 얻었다. 종전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에스프리'' 등에 글을 기고했고, 앙드레 바쟁 등과 교류했다. 유네스코 근무와 여행 경험, 사진 작업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1][6]
1950년대부터 영화 제작에 뛰어들어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등 좌안 영화 운동 그룹과 교류하며 초기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었다. ''조각상도 죽는다''(1953)는 식민주의 비판으로 상영 금지되기도 했다.[1] 이후 사진, 기록 영상, 해설 등을 결합한 독특한 '영화 에세이' 스타일을 ''베이징의 일요일''(1956),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1957) 등에서 발전시켰다.[1][9]
1962년 발표한 단편 영화 ''방파제''는 스틸 사진 몽타주와 내레이션만으로 구성된 실험적 형식과 내용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11] 후대 영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은 시기 제작된 ''아름다운 5월''(1963)은 당대 프랑스 사회를 포착한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았다.[1][12]
마르케는 정치적으로도 활발히 참여하여 베트남 전쟁 반대 옴니버스 영화 ''베트남에서 멀리''(1967)를 기획했고,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 이후 동료들과 영화 제작 집단 SLON(이후 ISKRA)을 결성하여 노동 운동과 사회 변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썼다.[1][13] 1970년대 중반 개인 작업으로 복귀하여 칠레의 정치적 격변을 다룬 《나선》(1975), 전 세계 신좌파 운동을 성찰한 《고양이 없는 미소》(1977) 등을 발표했다.[1]
1982년작 《태양 없이》는 기억, 시간, 문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에세이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1]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동료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는 디지털 기술과 멀티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작업을 선보였다.[19]
말년까지 파리에 거주하며 작업을 지속했으나,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리는 은둔적인 삶을 살았다. 자신의 사진 대신 고양이 사진을 보내는 일화는 유명하며, 그의 고양이 '기욤 앙 에지프트'(Guillaume-en-égyptefra)는 그의 아바타로 활용되기도 했다. 크리스 마르케는 2012년 7월 29일, 자신의 91번째 생일에 파리에서 사망했다.[25]
2. 1. 초기 생애 (1921-1949)
마르케는 '''Christian François Bouche-Villeneuve|크리스티앙 프랑수아 부셰-빌뇌브프랑스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 그의 정확한 출생지는 논란의 대상인데,[1] 일부 자료와 마르케 자신은 몽골 울란바토르 출생이라고 주장했고,[3] 다른 자료에서는 프랑스 파리 벨빌 또는 뇌이쉬르센 출생이라고 한다.[1] 1949년판 ''르 쾨르 네''에는 그의 생일이 7월 22일로 나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1921년 7월 29일 뇌이쉬르센 출생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마르케 본인이 몽골 출생이라 했지만 자신은 벨빌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4] 마르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잘 알리지 않았으며, 인터뷰를 거부하고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나의 영화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았다.[1]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프랑스에서 장폴 사르트르 밑에서 기 드보르와 함께 철학을 공부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기간 동안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부인 마키(FTP)에 합류하여 활동했다. 이때 모든 것을 기록하는 습관 때문에 "마르케"(Marker)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전쟁 중 프랑스를 떠나 미국 공군 공수부대에 입대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1]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5]
전쟁 후 마르케는 언론인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네오-가톨릭, 마르크스주의 잡지인 ''에스프리''(Esprit|에스프리프랑스어)에 글을 기고했으며, 이곳에서 동료 언론인이자 훗날 중요한 영화 이론가가 되는 앙드레 바쟁을 만났다. 마르케는 ''에스프리''에 정치 평론, 시, 단편 소설, 영화 평론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또한 유네스코 직원으로 일하며 전 세계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고, 여러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하며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평생 추구한 언론인이자 사진작가로서의 활동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 출판사 에디시옹 뒤 쇨은 그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인 ''프티트 플라네트''("작은 세계", Petite Planète|프티트 플라네트프랑스어)의 편집자로 고용했다.[6] 이 시리즈는 각 나라별 정보와 사진을 담아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으며,[1] 나중에 영어로도 번역 출판되었다.[7] 1949년에는 항공을 주제로 한 자신의 첫 소설 ''Le Cœur net|르 쾨르 네프랑스어''를 출판했다.[1]
2. 2. 초기 경력 (1950-1961)
저널리스트 경력 초기에 영화 제작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50년대 초에는 사진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마르케는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앙리 콜피, 아르망 가티와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장 카이롤 등 좌안 영화 운동의 여러 구성원들과 만나 친분을 쌓았다. 이 그룹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과 자주 연관되었으며, 서로 친구이자 저널리스트 동료이기도 했다. '좌안(Left Bank)'이라는 명칭은 영화 평론가 리처드 루드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8], 그는 이들을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고 우익의 순응주의에 비판적이며, 문학과 조형 예술에 깊이 관여하고 실험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가지며,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보이는" 특징을 지닌다고 묘사했다.[8] 아나톨 다우만은 마르케의 초기 영화 다수를 제작했다.1952년, 마르케는 자신의 첫 영화인 올림피아 52(Olympia 52)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관한 16mm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1953년에는 알랭 레네와 함께 다큐멘터리 ''조각상도 죽는다(Statues Also Die)''를 공동 제작했다. 이 영화는 조각상이나 가면 같은 전통 아프리카 예술이 서구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어떻게 쇠퇴해 가는지를 탐구한다. 영화는 1954년 장 비고 상을 수상했지만, 프랑스 식민주의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프랑스 검열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는 탄압을 받았다.[1]
1955년, 알랭 레네의 영화 ''밤과 안개''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후, 마르케는 자신의 대표적인 스타일이 될 단편 다큐멘터리, 즉 "영화 에세이" 형식의 ''베이징의 일요일''을 제작했다. 그는 1955년 9월 아르망 가티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여 2주 만에 이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 속 해설은 중국의 풍경 위에 겹쳐지며, 예를 들어 명나라 황제의 빈 무덤에 얽힌 중국 전설을 서구화된 시각과 대비시켜 보여준다.[1]
1957년, 알랭 레네의 영화 ''작업실의 수수께끼''의 해설 작업을 마친 후, 마르케는 장편 다큐멘터리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를 통해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켰다.[9] 시베리아의 변화 과정을 다룬 이 에세이 영화는 감독의 편지 형식으로 된 특유의 해설을 담고 있으며, 이는 프랑스 탐험가들이 '미지의' 세계를 서간문 형식으로 기록하던 오랜 전통을 따른다. ''편지''는 시베리아가 20세기로 나아가는 모습과 함께 과거로 사라져가는 일부 부족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르케는 시베리아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뿐만 아니라 오래된 뉴스릴 필름, 만화 시퀀스, 스틸 사진, 심지어 매드 매거진의 알프레드 E. 뉴먼 삽화와 가짜 TV 광고까지 활용하여 서구 대중문화에 대한 유머러스한 비판을 가미했다. 특히 동일한 짧은 영상 시퀀스를 세 번 반복하면서 각각 다른 해설(소련을 칭찬하는 내용, 비판하는 내용,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내용)을 붙여, 서사성과 영화 자체에 대한 메타적인 성찰을 시도했다.[1]
1959년에는 발레리안 보로프치크와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 ''우주 비행사들''(Les Astronautes)을 공동 제작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그림과 스틸 사진을 결합한 형식을 취했다. 1960년에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다큐멘터리 ''전투의 묘사''(Description d'un combat)를 제작했다.[1] 이 영화는 1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금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10]
1961년 1월, 마르케는 쿠바를 방문하여 영화 ''¡쿠바 시!''를 촬영했다. 이 영화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며, 카스트로와의 두 차례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는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로 미국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반미적인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데, 이로 인해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 금지된 영화의 해설은 마르케의 첫 번째 영화 해설집인 ''코멘터리 I''(Commentaires I)에 실려 1961년에 출판되었다. 그 다음 해 마르케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사진과 에세이 모음집인 ''한국인''(Coréennes)을 출판했다.[1]
2. 3. 《방파제》와 《아름다운 5월》 (1962-1966)
마르케는 1962년 단편 영화 ''방파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11] 이 영화는 다양한 속도로 전개되는 일련의 촬영된 사진을 포토몽타주로 구성하고, 제한적인 내레이션과 음향 효과를 사용하여 핵전쟁 이후의 과학 소설 실험인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미래의 3차 세계 대전 생존자는 오를리 공항의 방파제, 신비로운 여성의 이미지, 그리고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희미하고 단절된 기억에 사로잡힌다. 시간 여행을 실험하는 과학자들은 그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하고, 남자는 신비로운 여성과 접촉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오를리 공항에서 남자의 죽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에서 언급된 여성이 잠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나는 장면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장 키아보가 촬영한 사진으로만 구성되었으며, 다보스 하니치가 남자 역을, 엘렌 샤텔랭이 여자 역을, 사진 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윌리엄 클라인이 미래에서 온 남자 역을 맡았다.''방파제''를 제작하는 동안 마르케는 1963년에 개봉된 150분짜리 다큐멘터리 에세이 영화 ''아름다운 5월''도 동시에 제작했다. 1962년 봄부터 마르케와 그의 카메라 기사 피에르 롬므는 파리 거리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55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 마르케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그들의 사적인 삶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마르케는 풍경과 토착 예술의 몽타주를 만들었던 것처럼, 다양한 삶을 그의 독특한 해설(프랑스어 버전에서는 가수 겸 배우인 이브 몽탕, 영어 버전에서는 시몬 시뇨레가 해설)과 대조하고 병치하는 영화 에세이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장 루슈의 ''시네마 베리테'' 영화와 비교되었으며, 당시 그 분야의 실무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1] "시네마 베리테"라는 용어는 마르케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이었고, 그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ciné, ma vérité" 즉 "시네마, 나의 진실"이라는 자신만의 용어를 선호했다.[12] 이 영화는 1963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최우수 신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한 라이프치히 DOK 영화제에서 황금 비둘기상을 수상했다.
1965년 다큐멘터리 ''Le Mystère Koumiko'' 이후, 마르케는 ''Si j'avais quatre dromadaires''를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방파제''와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26개국에서 마르케가 촬영한 800장 이상의 사진으로 구성된 포토몽타주이다. 해설은 허구의 사진 작가와 두 친구의 대화로 이루어지며, 그들은 사진에 대해 논한다. 영화 제목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는 마르케가 수년간 "여행 영상"을 포함한 마지막 영화였다.[1]
2. 4. SLON과 ISKRA (1967-1974)
1967년, 마르케는 두 번째 영화 에세이집인 ''Commentaires II''를 출판했다. 같은 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옴니버스 영화 ''Loin du Vietnam''을 기획했다. 이 영화에는 마르케 자신을 비롯해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클로드 를루슈, 윌리엄 클라인, 미셸 레이, 요리스 이벤스 등이 참여했다. 영화는 전쟁 장면과 함께 뉴욕과 파리 등지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와 다양한 반전 활동들을 담았다.마르케는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좌익 성향의 영화 제작자들과 함께 S.L.O.N.을 설립했다.[13] S.L.O.N.은 '새로운 작품 발사 협회'(Société pour le lancement des oeuvres nouvellesfra)라는 의미와 함께, 러시아어로 '코끼리'를 뜻하기도 한다. SLON은 영화 제작과 더불어 산업 노동자들이 자체적인 영화 협동조합을 결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영화 집단이었다. 발레리 메이유, 장-클로드 레르너, 알랭 아데르, 존 투커 등이 구성원으로 참여했으며, 마르케는 SLON이 제작한 모든 영화의 감독 또는 공동 감독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 이후, 마르케는 개인적인 영화 작업을 잠시 접고 SLON의 활동에 더욱 헌신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SLON의 첫 공식 작품은 1968년 프랑스 로디아세타 공장 파업을 다룬 ''À bientôt, j'espère'' (''Rhodiacéta'')였다.[1] 같은 해 말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반전 시위를 담은 ''La Sixième face du pentagone''을 제작했다. 이는 당시 주류 방송이 반전 시위를 왜곡하거나 검열하여 보도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영화는 프랑수아 라이헨바흐가 촬영하고 공동 감독으로 참여했다.
1970년에는 ''La Bataille des dix millions''을 제작했다. 발레리 메이유가 공동 감독을, 산티아고 알바레스가 촬영을 맡았으며, 1970년 쿠바의 설탕 수확 정책과 그 실패가 가져온 국가적 파장에 대해 다루었다. 1971년에는 소련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메드킨의 1935년 작품 ''Schastye''가 프랑스에서 재개봉되는 것에 맞춰 새로운 프롤로그를 제작하기도 했다.[1]
1974년, SLON은 I.S.K.R.A.로 이름을 바꾸었다.[1] 이는 '이미지, 소리, 키네스코프, 연출, 시청각 자료'(Images, Sons, Kinescope, Réalisations, Audiovisuellesfra)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면서, 동시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창간한 정치 신문 ''이스크라''의 이름이자 러시아어로 '불꽃'을 의미하기도 한다.
2. 5. 개인 작업으로 복귀 (1974-1986)
1974년, 마르케는 집단 창작 프로젝트인 ISKRA 외부에서 개인적인 영화 작업을 재개했다. 첫 작품은 그의 친구인 가수 겸 배우 이브 몽탕에 관한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가수의 고독》(La Solitude du chanteur de fond)이었다. 이 영화는 몽탕이 칠레 난민을 돕기 위해 4년 만에 처음으로 가진 자선 콘서트를 기록했으며, 몽탕의 배우 경력을 보여주는 영화 클립들을 포함하고 있다.[1]마르케는 1973년부터 ISKRA와 함께 칠레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벨기에 사회학자 아르망 마테라르와 ISKRA 동료 발레리 메유, 자클린 메피엘과 협력하여 영상 자료를 촬영하고 수집했으며, 이를 편집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그 결과 1975년에 2시간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나선》(La Spirale)이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1973년 칠레 쿠데타와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다루었다.[1]
이후 마르케는 그의 가장 야심 찬 작품 중 하나인 《고양이 없는 미소》(A Grin Without a Cat) 제작에 착수하여 1977년에 공개했다. 영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에서 따왔다. 이는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 이전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이 가졌던 희망과 약속(미소)과 그 이후의 냉혹한 현실(고양이) 사이의 간극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어 원제 "Le fond de l'air est rouge"는 "공기는 본질적으로 붉다" 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돈다"는 의미로, 당시 사회주의 운동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14]
《고양이 없는 미소》는 1968년 이후의 정치 운동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며, 마르케 자신이 10년간 참여했던 활동을 집대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1968년 5월 이전의 희망과 이상을, 후반부는 혁명 이후 찾아온 환멸과 실망을 그린다. 마르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유명한 오데사 계단 시퀀스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며, 이 장면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 아닌 허구적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해설은 최소화되었지만, 특유의 몽타주 기법과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마르케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개봉 당시에는 여성 운동, 성 해방, 노동자 자주 관리 등 신좌파의 주요 쟁점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 이 영화는 2002년 미국에서 재개봉되었다.[14]
1970년대 후반, 마르케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2년 첫 사진 에세이집 《망향》(Le Dépays)을 출판했고, 같은 해 이 경험을 녹여낸 영화 《태양 없이》(Sans Soleil)를 발표했다.[1]
《태양 없이》는 다큐멘터리, 픽션, 철학적 성찰을 몽타주 기법으로 엮어내며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꿈과 공상 과학 소설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일본, 아프리카, 그리고 기억과 여행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영화 중간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을 직접적으로 참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르케는 《현기증》을 "불가능한 기억, 광적인 기억을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언급한 바 있다.[1] 영화의 내레이션은 가상의 촬영 감독 산도르 크라스나(Sandor Krasna)가 쓴 편지를 익명의 여성이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주된 촬영지는 일본이지만, 기니비사우,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 다른 여러 나라에서 촬영된 장면들도 포함되어 있다.[1] 《태양 없이》는 1983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OCIC 상(국제 가톨릭 영화 사무국 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영국 영화 협회(BFI)로부터 서덜랜드 트로피를 받았다.
1984년, 마르케는 프랑스 프로듀서 세르주 실버만의 제안으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란》의 제작 현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마르케는 1985년 다큐멘터리 《A.K.》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란》의 제작 과정 자체보다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차분하면서도 정중한 성격과 작업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5] 《A.K.》는 《란》이 개봉되기도 전인 1985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었다.[16]
1985년, 마르케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배우 시몬 시뇨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르케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1986년 1시간 분량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몬을 위한 추억》(Mémoires pour Simone)을 제작했다.[1]
2. 6. 멀티미디어와 후기 경력 (1987-2012)
크리스 마르케는 ''해 맑은 눈''을 만들면서 디지털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애플 II 컴퓨터에서 애플소프트 BASIC 언어를 사용하여 "Dialector"라는 이름의 초기 챗봇 형태의 대화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와 "컴퓨터" 간의 대화, 시 구절뿐만 아니라 시청각 요소까지 포함했다. 이 프로그램의 버전 6은 플로피 디스크에서 복원되어, 마르케의 도움과 허락을 받아 2015년에 온라인으로 에뮬레이션되었다.[17][18]디지털 기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영화 ''레벨 파이브''(1996)와 멀티미디어 CD-ROM ''Immemory''(1998년 초판, 2008년 재판)로 이어졌다. ''Immemory''는 퐁피두 센터(프랑스어판)와 엑자트 체인지(영어판)를 위해 제작된 대화형 작품이다.[19] 2005년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의뢰를 받아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영감을 얻은 19분짜리 멀티미디어 작품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을 제작했다.[20]
마르케는 파리에 거주하며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문 예외 중 하나는 2003년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과의 긴 인터뷰였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21] 자신의 사진을 요청받으면 고양이 사진을 대신 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2008년 다큐멘터리 ''아녜스의 해변''에서는 기술적으로 변조된 목소리로 말하는 고양이 만화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 마르케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은 Guillaume-en-égypte|기욤 앙 에지프트fra였다. 2009년에는 머시니마 작품에서 자신을 대신할 아바타로 --를 의뢰했다. 이 아바타는 Exosius Woolley가 제작했으며, 단편 영화이자 머시니마인 ''Ouvroir the Movie by Chris Marker''에 처음 등장했다.
2007년, Criterion Collection에서 출시된 ''방파제''와 ''해 맑은 눈'' DVD에는 마르케가 쓴 짧은 에세이 "Working on a Shoestring Budget"(적은 예산으로 작업하기)이 포함되었다. 이 글에서 그는 ''해 맑은 눈''의 모든 장면을 소리 없이 촬영하는 무성 영화 카메라로 찍고, 모든 음향은 초보적인 오디오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했다고 밝혔다. 또한 ''방파제''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이미지로 구성된 짧은 장면은 영화 작업 중 단 하루 오후 동안만 영화 카메라를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마르케는 예술품 딜러이자 출판인인 피터 블룸(Peter Blum)과 협력하여 뉴욕시 소호 및 첼시 지역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시했으며, 2014년에는 57번가 지점에서도 전시를 이어갔다. 이 시기에 전시된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22]
| 구분 | 작품명 |
|---|---|
| 사진 시리즈 | PASSENGERS, Koreans, Crush Art, Quelle heure est-elle?, Staring Back |
| 포토그래비어 | After Dürer |
| 책 | PASSENGERS |
| 디지털 프린트 (영화 포스터) | Breathless, Hiroshima Mon Amour, Owl People, Rin Tin Tin |
| 비디오 설치 | Silent Movie,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 (2009년 전시) |
이 작품들은 이후 다음과 같은 여러 국제적인 기관에서도 전시되었다.
| 국가 | 도시 | 기관명 |
|---|---|---|
| 이탈리아 | 베네치아 | 베니스 비엔날레 (2014, 2015) |
| 영국 | 런던 | 화이트채플 갤러리 |
| 미국 | 케임브리지 | MIT 리스트 시각 예술 센터 |
| 미국 | 케임브리지 | 하버드 대학교 카펜터 시각 예술 센터 |
| 러시아 | 모스크바 | 모스크바 포토비엔날레 |
| 프랑스 | 아를 | 레콩트르 다르 드 라 포토그래피 |
| 스위스 | 제네바 | 사진 센터 (Centre de la photographie Genève) |
| 미국 | 미니애폴리스 | 워커 아트 센터 |
| 미국 | 콜럼버스 | 웩스너 예술 센터 |
| 미국 | 뉴욕 | 현대 미술관 (MoMA) |
| 미국 | 버클리 |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크리스 마르케는 점차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50년대 초부터 사진과 영화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등 좌안 영화 운동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험 영화 제작에 몰두했으며,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공유했다.[8] 마르케의 초기 영화 다수는 아나톨 다우만이 제작했다.
2014년부터 크리스 마르케의 유산 작품들은 뉴욕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관리하고 있다.[23][24]
크리스 마르케는 2012년 7월 29일, 그의 91번째 생일에 파리에서 사망했다.[25]
3. 작품 세계
마르케의 영화 경력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을 다룬 다큐멘터리 올림피아 52(1952)로 시작되었다. 이듬해 알랭 레네와 공동 제작한 ''조각상도 죽는다''(1953)는 아프리카 예술을 통해 서구 식민주의를 비판하여 주목받았으나, 프랑스 내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1] 1955년작 ''베이징의 일요일''과 1957년작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를 통해 마르케는 영상, 스틸 사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시각 자료와 주관적인 해설을 결합하는 독특한 "영화 에세이" 스타일을 확립했다.[1][9] 이후 애니메이션(''우주 비행사들'', 1959), 이스라엘 탐구(''전투의 묘사'', 1960), 쿠바 혁명 지지(''¡쿠바 시!'', 1961)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1][10]
3. 1. 에세이 영화
크리스 마르케는 저널리스트 경력 초기에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50년대 초 사진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마르케는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앙리 콜피, 아르망 가티와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장 카이롤 등 좌안 영화 운동의 여러 구성원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 그룹은 동시대에 활동한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과 자주 연관되었으며, 서로 친구이자 저널리스트 동료이기도 했다. '좌안(Left Bank)'이라는 명칭은 영화 평론가 리처드 루드가 처음 사용했으며[8], 그는 이들을 "보헤미안적인 삶의 방식과 우익의 순응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 문학과 조형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실험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하며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8] 아나톨 다우만은 마르케의 초기 영화 다수를 제작했다.
1952년 마르케는 첫 영화인 올림피아 52(Olympia 52)를 제작했다. 이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을 다룬 16mm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1953년에는 알랭 레네와 함께 다큐멘터리 ''조각상도 죽는다(Statues Also Die)''를 공동 제작했다. 이 영화는 조각상, 가면 등 전통적인 아프리카 예술이 서구 식민주의의 도래와 함께 어떻게 쇠퇴해 가는지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1954년 장 비고 상을 수상했지만, 프랑스 식민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검열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었다.[1]
1955년, 레네의 영화 ''밤과 안개''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후, 마르케는 자신의 경력 전반을 특징짓는 스타일인 단편 다큐멘터리, 즉 "영화 에세이" 형식의 ''베이징의 일요일''을 제작했다. 마르케는 1955년 9월 아르망 가티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여 2주 만에 이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 속 마르케의 해설은 중국의 풍경 위에 겹쳐지는데, 예를 들어 명나라 황제의 유해가 없는 묘비를 보여주면서 중국 전설에 대한 서구화된 이해와 대비시킨다.[1]
1957년 레네의 영화 ''작업실의 수수께끼'' 해설 작업을 마친 후, 마르케는 장편 다큐멘터리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켰다.[9] 시베리아의 변화상을 다룬 이 에세이 영화는 프랑스 탐험가들이 '미개척지'를 탐험하며 기록을 남기던 서간체 전통을 따라, 감독의 편지 형식으로 된 마르케 특유의 해설을 담고 있다. ''편지''는 시베리아가 20세기로 진입하는 모습과 함께 과거로 사라져가는 일부 부족 문화의 관행들을 보여준다. 마르케는 시베리아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과 오래된 뉴스릴 필름, 만화 시퀀스, 스틸 사진, 심지어 매드 매거진의 알프레드 E. 뉴먼 삽화와 가짜 TV 광고까지 결합하여 서구 대중문화에 대한 유머러스한 비판을 가한다. 특히 동일한 짧은 영상 시퀀스를 세 번 반복 사용하면서 각각 다른 해설을 덧붙이는 실험적인 방식을 선보였다. 첫 번째 해설은 소련을 찬양하고, 두 번째는 비판하며, 세 번째는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1]
1959년 마르케는 발레리안 보로프치크와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 ''우주 비행사들''(Les Astronautes)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전통적인 그림과 스틸 사진을 결합한 형태였다. 1960년에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다큐멘터리 ''전투의 묘사''(Description d'un combat)를 만들었다.[1] 이 영화는 1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금곰상을 수상했다.[10]
1961년 1월, 마르케는 쿠바를 방문하여 영화 ''¡쿠바 시!''를 촬영했다. 이 영화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며, 카스트로와의 두 차례 인터뷰를 포함한다. 영화는 피그스만 침공 실패로 당혹스러워하는 미국을 비판하는 반미적인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며, 이로 인해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 금지된 에세이의 내용은 마르케의 첫 번째 영화 해설집인 ''코멘터리 I''(Commentaires I)에 포함되어 1961년에 출판되었다. 이듬해 마르케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사진과 에세이를 모은 ''한국인''(Coréennes)을 출판했다.[1]
마르케는 1962년 단편 영화 ''La Jetée''(''방파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11] 이 영화는 다양한 속도로 전개되는 일련의 스틸 사진들을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구성하고, 제한적인 내레이션과 음향 효과를 사용하여 핵전쟁 이후 시간 여행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 주인공인 3차 세계대전 생존자는 오를리 공항의 방파제에서 본 신비로운 여성의 이미지와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희미하고 단편적인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 여행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남자는 과거로 돌아가 그 여성과 접촉하려 하지만 결국 오를리 공항에서 목격했던 죽음이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음을 깨닫는다. 영화 속 여성이 잠에서 깨어나는 짧은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 전체는 장 키아보가 촬영한 스틸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다보스 하니치가 남자 주인공 역을, 엘렌 샤텔랭이 여자 주인공 역을, 사진가이자 영화감독인 윌리엄 클라인이 미래에서 온 남자 역을 맡았다.
''La Jetée''를 제작하는 동안 마르케는 1963년에 개봉한 15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에세이 영화 ''Le joli mai''도 동시에 만들었다. 1962년 봄, 마르케와 촬영 기사 피에르 롬므는 파리 거리에서 무작위로 시민들을 인터뷰하며 총 55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마르케가 던지는 질문들은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쟁점까지 다양했다. 마르케는 이전 작품들에서 풍경이나 토착 예술을 몽타주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인터뷰 영상과 함께 자신의 독특한 해설(프랑스어 버전은 가수 겸 배우 이브 몽탕, 영어 버전은 시몬 시뇨레가 담당)을 통해 대조하고 병치시키는 영화 에세이를 창조했다. 이 영화는 장 루슈의 시네마 베리테 영화들과 비교되기도 했으나, 당시 시네마 베리테 진영의 감독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1] 마르케 자신은 "시네마 베리테"라는 용어를 싫어했으며, 대신 "ciné, ma vérité"(시네마, 나의 진실)라는 자신만의 표현을 선호했다.[12] 이 영화는 1963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최우수 신인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라이프치히 DOK 영화제에서는 황금 비둘기상을 받았다.
1965년 다큐멘터리 ''Le Mystère Koumiko'' 이후, 마르케는 ''Si j'avais quatre dromadaires''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La Jetée''와 유사하게, 지난 10년간 마르케가 26개국에서 촬영한 800장 이상의 사진으로 구성된 포토몽타주이다. 해설은 가상의 사진작가와 그의 두 친구가 사진에 대해 토론하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영화 제목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영화는 마르케가 수년간 촬영해 온 "여행 영상"을 활용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1]
1974년, 마르케는 다시 개인적인 작업으로 돌아와 ISKRA 외부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가수의 고독''(La Solitude du chanteur de fond)은 마르케의 친구인 이브 몽탕이 칠레 난민을 위해 연 자선 콘서트를 다룬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다. 이 콘서트는 몽탕이 4년 만에 가진 첫 공개 공연이었으며, 다큐멘터리에는 몽탕의 오랜 배우 경력에서 발췌한 영화 클립들이 포함되어 있다.[1]
마르케는 1973년부터 ISKRA와 함께 칠레에 관한 영화 작업을 진행해왔다. 벨기에 사회학자 아르망 마테라르, ISKRA 동료 발레리 메유, 자클린 메피엘과 협력하여 시각 자료를 촬영하고 수집했으며, 마르케는 이를 편집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그 결과물인 2시간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나선''(La Spirale)은 1975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그의 죽음과 1973년 칠레 쿠데타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했다.[1]
이후 마르케는 그의 가장 야심 찬 영화 중 하나인 ''고양이 없는 미소''(A Grin Without a Cat) 제작에 착수하여 1977년에 완성했다. 영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를 암시한다. 이 은유는 1968년 5월 혁명 이전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희망찬 약속(미소)과 1968년 5월 이후의 냉혹한 현실(고양이 없는 미소)을 비교한다. 영화의 원제인 "Le fond de l'air est rouge"는 "공기는 본질적으로 붉다" 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돈다"는 의미로, 사회주의 운동이 당시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14]
이 영화는 1968년 5월 이후의 정치 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초상화이자, 마르케가 10년간 참여했던 작업의 총결산으로 기획되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1968년 5월 이전의 희망과 이상을, 후반부는 그 사건 이후의 환멸과 실망을 다룬다. 마르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유명한 오데사 계단 시퀀스로 영화를 시작하는데, 이 장면이 에이젠슈테인의 허구적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사적 사건의 이미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마르케는 이 영화에서 해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몽타주 구조와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착은 그의 영화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여성 운동, 성 해방, 노동자 자율 관리와 같은 신좌파의 여러 중요 쟁점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 이 영화는 2002년 미국에서 재개봉되었다.[14]
1970년대 후반, 마르케는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2년 첫 사진 에세이집 ''망향''(Le Dépays)을 출판했고, 같은 해 이 경험을 녹여낸 영화 ''태양 없이''(Sans Soleil)를 개봉했다.[1]
''태양 없이''는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다큐멘터리 영상 조각, 허구적 요소, 철학적 논평을 혼합하는 몽타주 방식을 통해 꿈이나 공상 과학 소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의 주요 주제는 일본, 아프리카, 기억, 그리고 여행이다. 영화 중간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시퀀스가 등장하는데,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 (영화)''에 대한 강한 참조를 보여준다. 마르케는 ''현기증''을 "불가능한 기억, 광적인 기억을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언급한 바 있다.[1] 영화의 해설은 가상의 촬영 기사인 산도르 크라스나(Sandor Krasna)가 쓴 편지를 이름 없는 여성이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주로 일본에서 촬영되었지만, 기니비사우,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 촬영된 장면들도 포함되어 있다.[1] ''태양 없이''는 1983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OCIC 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영국 영화 협회 상에서 서덜랜드 트로피를 받았다.
1984년, 마르케는 프로듀서 세르주 실버만의 제안으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란 (영화)'' 제작 과정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마르케는 1985년 다큐멘터리 ''A.K.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영화 제작 과정 자체보다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차분하면서도 예의 바른 성격에 더 초점을 맞춘다.[15] 이 영화는 ''란''이 개봉되기도 전인 1985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되었다.[16]
1985년, 마르케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배우 시몬 시뇨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르케는 1986년 그녀를 기리기 위해 1시간 분량의 TV 다큐멘터리 ''시몬을 위한 추억''(Mémoires pour Simone)을 제작했다.[1]
3. 2. 기억과 시간
크리스 마르케의 작품 세계에서 시간과 기억, 그리고 역사는 반복적으로 탐구되는 핵심 주제이다. 그의 초기 다큐멘터리 작업부터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알랭 레네와 공동 감독한 ''조각상도 죽는다''(Statues Also Die, 1953)는 전통적인 아프리카 예술이 서구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쇠퇴하는 과정을 그리며 문화적 기억의 소실 문제를 다루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때문에 프랑스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1]
1957년작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Letter from Siberia)는 시베리아가 현대화되는 과정과 사라져가는 부족 문화를 편지 형식의 해설과 함께 보여주는 에세이 영화이다.[9] 특히 이 영화에서 마르케는 동일한 짧은 영상 시퀀스를 세 번 반복하면서 각각 소련을 찬양하거나, 비판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해설을 덧붙인다. 이를 통해 역사가 어떻게 서술되고 기억이 구성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1]
마르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1962년에 발표된 단편 영화 ''La Jetée''(방파제)이다.[11] 이 영화는 제3차 세계 대전 이후의 파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시간 여행과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SF물이다. 영화는 대부분 정지된 사진들의 포토몽타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내레이션과 음향 효과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오를리 공항의 방파제에서 목격했던 강렬한 기억(한 남자의 죽음과 한 여성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으며, 미래의 과학자들에 의해 과거로 보내진다. 그는 과거에서 그 여성과 재회하지만, 결국 자신이 어릴 적 목격했던 죽음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기억의 본질과 시간의 비선형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보여주며,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12 몽키즈''(1995)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76]
기억을 다루는 또 다른 포토몽타주 방식의 영화로는 ''내가 네 마리 낙타를 가졌다면''(Si j'avais quatre dromadaires, 1966)이 있다. 이 작품은 마르케가 10년간 26개국을 여행하며 촬영한 800장 이상의 스틸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상의 사진작가와 친구들이 사진에 대해 나누는 대화 형식의 해설이 덧붙여진다.[1]
역사적 기억과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성찰은 ''고양이 없는 미소''(A Grin Without a Cat, 1977)에서 두드러진다. 원제 "Le fond de l'air est rouge"(공기는 본래 붉다)는 1968년 5월 혁명 전후의 전 세계적인 신좌파 운동의 열기와 이후의 좌절을 다룬다. 영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의 미소에 빗대어, 혁명의 약속(미소)과 그것이 사라진 현실(고양이)을 은유한다.[14]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정치적 사건들을 방대한 영상 자료를 통해 엮어내며, 희망과 이상이 어떻게 좌절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유명한 오데사 계단 시퀀스를 인용하면서, 실제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기억을 형성하는 이미지의 강력한 힘을 지적한다.[1]
마르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태양 없이''(Sans Soleil, 1982)는 기억과 여행이라는 주제를 일본과 아프리카(특히 기니비사우)를 배경으로 탐구하는 에세이 영화이다.[1]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상, 허구적 요소, 철학적 성찰이 몽타주 기법을 통해 결합되어 있으며,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가상의 카메라맨 산도르 크라스나가 보낸 편지를 한 여성이 읽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영화)''을 참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르케는 ''현기증''을 "불가능한 기억, 광적인 기억을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언급하며 기억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본질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1]
만년의 마르케는 디지털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기억이라는 주제를 계속 탐구했다. 그는 1998년 퐁피두 센터를 위해 ''Immemory''라는 제목의 대화형 멀티미디어 CD-ROM을 제작했는데, 이는 사용자가 마르케의 이미지와 텍스트 아카이브를 탐색하며 개인적인 기억의 연상 작용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작품이다.[19] 이처럼 크리스 마르케는 사진, 영화, 비디오,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고, 때로는 왜곡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평생에 걸쳐 던졌다.
3. 3. 정치와 사회 참여
크리스 마르케의 정치 및 사회 참여는 그의 삶과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에 맞서 프랑스 지하 저항 조직 마키에 참여한 경험은 그의 초기 정치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76] 전후에는 장폴 사르트르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유네스코 직원으로 일하며 여러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한 세계 곳곳을 방문하고 기록했다.
1950년대 초, 마르케는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등과 교류하며 좌안 영화 운동의 일원이 되었다. 이 그룹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험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가졌으며,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공유했다.[8] 마르케의 초기작부터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알랭 레네와 공동 감독한 ''조각상도 죽는다''(1953)는 아프리카 예술을 통해 서구 식민주의를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1] 1955년 중국 여행을 바탕으로 제작된 ''베이징의 일요일''은 서구의 시선과는 다른 중국의 현실을 담아내려 시도했다.[1]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1957)에서는 동일한 장면에 각각 소련을 칭찬하거나 비판하거나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세 가지 다른 해설을 붙여, 다큐멘터리 서사의 주관성과 정치적 함의를 탐구했다.[1][9]
1960년대 들어 마르케의 정치적 목소리는 더욱 분명해졌다. ''전투의 묘사''(1960)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성찰했으며,[1] 1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금곰상을 수상했다.[10] 1961년 쿠바 방문 후 제작한 ''¡쿠바 시!''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상영이 금지되었다.[1] 이듬해 마르케는 분단된 한국의 상황에 대한 사진과 에세이 모음집인 ''한국인''(''Coréennes'')을 출판했다.[1]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자 마르케는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67년에는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등 동료 감독들과 함께 베트남 전쟁 반대 옴니버스 영화 ''Loin du Vietnam'' 제작을 기획하고 직접 참여했다. 같은 해, 그는 좌파 영화 제작자들과 함께 영화 제작 및 배급 협동조합인 SLON(''Société pour le lancement des oeuvres nouvelles'', "새로운 작품 발사 협회"라는 뜻 외에 러시아어로 "코끼리"를 의미하기도 함)을 설립했다.[13] SLON은 영화를 제작하고 산업 노동자들이 자체적인 영화 협동 조합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 집단이었다.[1] 마르케는 1968년 5월 프랑스의 사건 이후, 개인적인 영화 경력을 포기하고 SLON과 그 활동에 헌신해야 할 도덕적 의무감을 느꼈다. SLON의 첫 번째 영화는 1968년 프랑스 로디아세타 공장의 파업에 관한 ''À bientôt, j'espère''(''Rhodiacéta'')였다.[1] 그해 말 SLON은 워싱턴 D.C.에서의 반전 시위에 관한 ''La Sixième face du pentagone''을 제작했는데, 이는 주류 텔레비전에서 그러한 사건들을 불공정하고 검열된 방식으로 보도한다고 SLON이 판단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영화는 프랑수아 라이헨바흐가 촬영했으며 공동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La Bataille des dix millions''은 1970년에 제작되었으며, 1970년 쿠바의 설탕 수확과 그로 인한 국가의 재앙적인 영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1] 또한 마르케는 1967년부터 고다르 등과 함께 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의 이름을 딴 "메드베드킨 집단"(Les groupes Medvedkine)을 조직하여 브장송과 소쇼 지역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는 활동을 벌였고, 이는 1973년까지 이어졌다.[77] SLON은 1974년 ISKRA(''Images, Sons, Kinescope, Réalisations, Audiovisuelles''이지만, 또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정치 신문 ''이스크라''의 이름이기도 하며, 러시아어로 "불꽃"을 의미하기도 함)가 되었다.[1]
1974년, 마르케는 개인적인 작업으로 복귀하여 ISKRA 밖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가수의 고독》(La Solitude du chanteur de fond)은 마르케의 친구 이브 몽탕의 칠레 난민을 위한 자선 콘서트에 관한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다.[1] 마르케는 1973년부터 ISKRA와 함께 칠레에 관한 영화 작업을 해왔으며, 벨기에 사회학자 아르망 마테라르, ISKRA 멤버들과 협력하여 시각 자료를 촬영하고 수집했다. 마르케는 이를 편집하고 해설을 제공하여 1975년에 2시간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나선》(La Spirale)을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된 이후 그의 살바도르 아옌데 암살과 1973년 칠레 쿠데타로 이어진 사건들을 기록했다.[1]
마르케는 그 후 그의 가장 야심 찬 영화 중 하나인 《고양이 없는 미소》(A Grin Without a Cat)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1977년에 개봉했다. 영화 제목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를 가리킨다. 이 은유는 1968년 5월 프랑스 이전의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약속(웃음)과 1968년 5월 이후의 현실(고양이)을 비교한다. 이 영화의 원래 프랑스어 제목은 "Le fond de l'air est rouge"이며, 이는 "공기는 본질적으로 붉다" 또는 "혁명이 감돌고 있다"는 뜻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했음을 암시한다.[14] 이 영화는 1968년 5월 이후의 정치 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초상으로, 그가 10년 동안 참여했던 작업의 요약본으로 의도되었다. 마르케는 이 영화에서 해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몽타주 구조와 기억에 대한 집착은 마르케 영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여성 운동, 성적 해방, 노동자 자율 관리와 같은 신좌파의 많은 현안을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1]
3. 4. 한국과의 인연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크리스 마르케와 한국과의 직접적인 인연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4. 유산
마르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 줴』(1962년)는 독특한 구성과 내용으로 후대의 많은 영화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이 영화는 스틸 사진의 몽타주와 내레이션으로 구성된 "포토 로망" 형식으로, 제3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시간과 기억을 다룬 SF 단편이다.[76] 『라 줴』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87년 데뷔 실사 영화 『붉은 안경』과 2001년 영화 『아발론』에 영감을 주었으며,[26][76] 테리 길리엄 감독의 1995년 영화 『12 몽키즈』의 원안이 되었다.[26][76] 또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알파빌』(1965) 및 옴니버스 영화 『사랑하는 여자·여자들』(1967) 중 「미래 전망」 편,[76] 호나스 쿠아론 감독의 2007년 영화 『네일의 해』, 그리고 미라 네어 감독이 2006년 영화 『그 이름』에서 사용한 많은 장면에도 영감을 주었다.[26]
5. 작품 목록
크리스 마르케는 영화 감독, 사진가, 작가, 멀티미디어 예술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에세이 영화, 단편, 설치 미술 등 다양한 형식을 아우르며, 주로 기억, 역사, 여행, 정치, 고양이 등의 주제를 탐구했다.
특히 알랭 레네, 장뤽 고다르 등 누벨 바그 감독들과 교류하며 독창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했으며, 몽타주 기법과 내레이션을 활용한 에세이 영화 형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라 제테, 태양 없이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수많은 영화 연출 및 협업, 사진 작업, 저술 활동을 통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중요한 시네아스트이자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5. 1. 영화
| 연도 | 한국어 제목 | 원제 | 비고 |
|---|---|---|---|
| 1946 | 'La fin du monde, vu[e] par lange Gabriel'' | 길이 불명 (8mm) | |
| 1952 | 올림피아 52 | Olympiade 52 | |
| 1953 | 조각상도 죽는다 | Les statues meurent aussi | 알랭 레네와 공동 연출 |
| 1954 | La clé des songes | 길이 불명 (16mm) | |
| 1955 | Un fichu métier | 길이 불명 | |
| 1956 | 베이징의 일요일 | Dimanche à Pékin | |
| 1957 | 시베리아로부터의 편지 | Lettre de Sibérie | |
| 1959 | 레 아스트로노트 | Les Astronautes | 왈레리안 보로브치크와 공동 연출 |
| 1960 | 전투의 묘사 | 'Description dun combat'' | |
| 1961 | ¡쿠바 시! | ¡Cuba Sí! | |
| 1962 | 라 제테 | La Jetée | |
| 1963 | 아름다운 5월 | Le Joli Mai | 2006년 재편집 |
| 1965 | 르 미스테르 쿠미코 | Le Mystère Koumiko | |
| 1966 | 만약 내게 네 마리의 낙타가 있다면 | 'Si javais quatre dromadaires'' | |
| 1967 | 베트남에서 멀리 | Loin du Vietnam | 공동 연출 참여 |
| 1967 | 로디아세타 | Rhodiacéta | |
| 1968 | 육각형의 여섯 번째 면 | La Sixième face du pentagone | 라이헨바흐와 공동 연출 |
| 1968 | 시네트랙트 | Cinétracts | |
| 1968 | 곧 만나요 | 'À bientôt, jespère'' | 마레와 공동 연출 |
| 1969 | 브라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문 | On vous parle du Brésil: Tortures | |
| 1969 | 촬영의 날 | Jour de tournage | |
| 1969 | 계급 투쟁 | Classe de lutte | |
| 1969 | Rhodia 4x8 | ||
| 1970 | 파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페로, 단어에는 의미가 있다 | On vous parle de Paris: Maspero, les mots ont un sens | |
| 1970 | 브라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카를로스 마리겔라 | On vous parle du Brésil: Carlos Marighela | |
| 1970 | Die Kamera in der Fabrik | ||
| 1971 | 1천만 명의 전투 | La Bataille des dix millions | |
| 1971 | 달리는 기차 | Le Train en marche | |
| 1971 | 프라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르투르 런던의 두 번째 재판 | 'On vous parle de Prague: le deuxième procès dArtur London'' | |
| 1972 | 고래 만세 | Vive la baleine | |
| 1973 | 대사관 | 'LAmbassade'' | |
| 1973 | 칠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옌데가 말했던 것 | On vous parle du Chili: ce que disait Allende | 미겔 리틴과 공동 연출 |
| 1973 | 여러분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 'Puisquon vous dit que cst possible | |
| 1974 | 고독한 심해 가수의 고독 | La Solitude du chanteur de fond | 이브 몽탕에 관한 다큐멘터리 |
| 1975 | 나선 | La Spirale | |
| 1977 | 붉은 대기 (고양이 없는 미소) | 'Le Fond de lair est rouge'' (A Grin Without a Cat) | |
| 1978 | 세기가 형태를 갖추었을 때 | Quand le siècle a pris formes | |
| 1981 | 정크피아 | Junkopia | |
| 1983 | 태양 없이 | Sans Soleil | |
| 1984 | 2084 | 2084 | |
| 1985 | 크리스에서 크리스토까지 | From Chris to Christo | |
| 1985 | 마타 | Matta | 로베르토 마타에 관한 다큐멘터리 |
| 1985 | A.K. | A.K. |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다큐멘터리 |
| 1986 | 에클라 | Eclats | |
| 1986 | 시몬을 위한 회고록 | Mémoires pour Simone | 시몬 시뇨레에 관한 다큐멘터리 |
| 1988 | 도쿄 데이즈 | Tokyo Days | |
| 1988 | 스펙트르 | Spectre | |
| 1989 | 올빼미의 유산 | 'Lhéritage de la chouette'' | |
| 1990 | 베스티에르 | Bestiaire | 비디오 하이쿠 시리즈 |
| 1990 | 음악을 듣는 고양이 | Bestiaire 1. Chat écoutant la musique | 베스티에르 시리즈 1 |
| 1990 | 올빼미는 올빼미다 | Bestiaire 2. An owl is An owl is an owl | 베스티에르 시리즈 2 |
| 1990 | 동물원 조각 | Bestiaire 3. Zoo Piece | 베스티에르 시리즈 3 |
| 1990 | 그것에서 벗어나기 | Getting away with it | |
| 1990 | 베를린 1990 | Berlin 1990 | |
| 1991 | 체우세스쿠의 우회 | Détour Ceausescu | |
| 1991 | 집합론 | Théorie des ensembles | |
| 1992 | 코인 피네트르 | Coin fenêtre | |
| 1992 | 아줄문 | Azulmoon | |
| 1992 | 마지막 볼셰비키 (알렉산드르의 무덤) | 'Le Tombeau dAlexandre'' (The Last Bolshevik) | |
| 1992 | Le Facteur sonne toujours cheval | ||
| 1993 | 캠프의 20시 | Le 20 heurs dans les camps | |
| 1993 | 캠프의 황금 시간 | Prime Time in the Camps | |
| 1993 | 슬론 탱고 | SLON Tango | |
| 1994 | 오키나와 투우 | Bullfight in Okinawa | |
| 1994 | 이클립스 | Eclipse | |
| 1994 | 하이쿠 | Haiku | 비디오 하이쿠 시리즈 |
| 1994 | 페티트 생트르 | Haiku 1. Petite Ceinture | 하이쿠 시리즈 1 |
| 1994 | 차이카 | Haiku 2. Chaika | 하이쿠 시리즈 2 |
| 1994 | 올빼미가 당신의 눈에 들어온다 | Haiku 3. Owl Gets in Your Eyes | 하이쿠 시리즈 3 |
| 1995 | 헬멧 블루 | Casque bleu | |
| 1995 | 무성 영화 | Silent Movie | |
| 1997 | 레벨 5 | Level Five | |
| 1997 | Stephan Hermlin | ||
| 1999 | 이클립스 | Éclipse | |
| 2000 | 안드레이 아르세네비치의 어느 날 | 'Une journée dAndrei Arsenevitch''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에 관한 다큐멘터리 |
| 2000 | 코소보의 시장 | Un maire au Kosovo | |
| 2001 | 우편배달부는 항상 말을 울린다 | Le Facteur sonne toujours cheval | |
| 2001 | 불안한 4월 | Avril inquiet | |
| 2003 | 미래의 기억 | 'Le Souvenir dun avenir'' | 벨론과 공동 연출 |
| 2004 | 고양이 놀이터 | Chats Perchés | M. Chat의 거리 예술에 관한 다큐멘터리 |
| 2006 | 레일라의 공격 | Leila Attacks | |
| 2011 | 두바이 경유 | Stopover in Dubai | |
| 2011 | And You Are Here |

5. 2. 영화 협업
크리스 마르케는 다양한 영화 제작자들과 협력하여 여러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그 방식은 공동 연출, 조감독, 해설 및 각본 작성, 편집, 내레이션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주요 협업 내역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작품 제목 | 협업자 | 마르케의 역할 |
|---|---|---|---|
| 1953 | 조각상도 또한 죽는다 (Les Statues meurent aussi) | 알랭 레네 | 공동 연출 |
| 1955 | 밤과 안개 (Nuit et brouillard) | 알랭 레네 | 조감독, 해설 공동 작업 (알랭 레네는 1995년 인터뷰에서 해설 최종본이 마르케와 장 카이롤의 공동 작업이라 언급, 출처: Film Comment) |
| 1956 | Toute la mémoire du monde | 알랭 레네 | "크리스와 매직 마커"로 크레딧됨[74] |
| 1956 | Les hommes de la baleine | 마리오 뤼스폴리 | 해설 작성 ("자코포 베레니지" 가명 사용, 아조레스 제도 고래 사냥꾼에 대한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57 | 브로드웨이 바이 라이트 | 윌리엄 클라인 | 서문 작성[74] |
| 1957 | Le mystere de l'atelier quinze | 알랭 레네, 앙드레 하인리히 | 해설 작성 (픽션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58 | Le Siècle a soif | 레이몽 보겔 | 해설 작성 및 내레이션 (알렉산드린 연시 형식, 과일 주스에 대한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58 | La Mer et les jours | 레이몽 보겔, 장 카민커 | 해설 제공 (브르타뉴 일드생 섬 어부들의 생활에 대한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58 | 이상한 아메리카 (L'Amérique insolite) | 프랑수아 라이헨바흐 | 작가 (대본 작성, 출처: Film Comment) |
| 1959 | 장고 라인하르트 | 폴 파비오 | 내레이션 (출처: Film Comment) |
| 1959 | 우주비행사 (Les Astronautes) | 발레리안 보로브치크 | 공동 연출 |
| 1962 | Jouer à Paris | 프랑수아 바를랭 | 편집 (아름다운 오월의 남은 푸티지를 활용해 새로운 해설을 덧붙여 제작된 27분 분량의 후기, 출처: Film Comment) |
| 1963 | 아름다운 오월 (Le Joli mai) | 피에르 롬 | 공동 연출 |
| 1963 | 발파라이소 | 요리스 이반스 | 각본 작성 |
| 1964 | Les Chemins de la fortune | 피에르 카소비츠 | 편집 및 정리 도움 (베네수엘라 여행기, 출처: Film Comment) |
| 1964 | La Douceur du village | 프랑수아 라이헨바흐 | 편집 |
| 1964 | La Brûlure de mille soleils | 피에르 카스트 | 편집 및 각본 참여 (추정, SF 애니메이션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66 | 금지된 화산 (Volcanoes) | 하룬 타지에프 | 내레이션 (화산 다큐멘터리) |
| 1966 | 유로포트-로테르담 | 요리스 이반스 | 텍스트 각색 (출처: Film Comment) |
| 1968 | 머지않아 (A bientôt, j'espère) | 마리오 말레 | 공동 연출 |
| 1968 | 펜타곤의 여섯 번째 면 (La Sixième face du pentagone) | 프랑수아 레샹바크 | 공동 연출 |
| 1969 | Jour de tournage | 피에르 뒤푸에 | 공동 연출 |
| 1970 | On vous parle de Flins | 기 데바르 | 촬영 및 편집 도움 (단편, 출처: Film Comment) |
| 1970 | L'Afrique express | 필리프 테시에, 장 랑 | 서문 작성 ("보리스 빌뇌브" 가명 사용, 출처: Film Comment) |
| 1971 | 천만 명의 투쟁 (La Bataille des dix millions) | 발레리 마유 | 공동 연출 |
| 1971 | 콩고 오예 (우리가 돌아왔다) (Congo Oyé (We Have Come Back)) | 엘드리지 클리버, 윌리엄 클라인 등 | 편집[75] |
| 1972 | 고래 만세 (Vive la baleine) | 마리오 르스폴리 | 공동 연출 |
| 1973 | 칠레로부터의 보고: 아옌데는 무엇을 말했는가 (On vous parle du chili : ce que disait Allende) | 미겔 리틴 | 공동 연출 |
| 1974 | 가시마 파라다이스 | 야닉 르 마송, 베니 데스바르트 | 해설 참여 (가시마와 나리타 개발에 대한 다큐멘터리, 출처: Film Comment) |
| 1975–1976 | 칠레 전투 (La Batalla de Chile) | 파트리시오 구스만 | 제작 도움 및 각본 기여 (출처: Film Comment) |
| 1994 | 하나의 자매와 많은 형제들 (A Hole in the Soul) | 두샨 마카베예프 | 촬영 참여 (마카베예프의 명예를 기리는 파티 장면 촬영, 출처: Film Comment) |
| 2000 | 코소보의 시장 (Un maire au Kosovo) | 프랑수아 크레뮤 | 공동 연출 |
| 2001 | 미래의 기억 (Le Souvenir d'un avenir) | 야니크 브론 | 공동 연출 |
| 2008 | Henchman Glance / Le Regard du bourreau | (원작: 레오 허위츠, 알랭 레네) | 레오 허위츠의 『아이히만 재판』(1961)과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1955) 푸티지를 이용한 편집 및 재구성 |
5. 3. 사진
크리스 마르케는 ''해 맑은 눈'' 작업을 계기로 디지털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애플 II 컴퓨터용 애플소프트 BASIC으로 "Dialector"라는 초기 챗봇 형태의 대화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와 "컴퓨터" 간의 대화, 시 구절, 시청각 요소를 통합했으며, 버전 6은 플로피 디스크에서 복원되어 2015년 온라인으로 에뮬레이션되었다.[17][18]디지털 기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영화 ''레벨 파이브''(1996)와 대화형 멀티미디어 CD-ROM인 ''Immemory''(1998년 초판, 2008년 재판)로 이어졌다. ''Immemory''는 퐁피두 센터(프랑스어판)와 엑자트 체인지(영어판)를 위해 제작되었다.[19] 2005년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을 위해 T. S. 엘리엇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19분짜리 멀티미디어 작품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을 제작했다.[20]
마르케는 파리에 거주하며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 2003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21] 그는 자신의 사진을 요청받으면 보통 고양이 사진을 대신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녜스 바르다의 2008년 다큐멘터리 ''아녜스의 해변''에서는 기술적으로 변조된 목소리로 말하는 고양이 만화 그림으로 등장한다.) 마르케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은 Guillaume-en-égypte|기욤 앙 에지프트프랑스어였다. 2009년에는 머시니마 작품에서 자신을 대신할 기욤 앙 에지프트의 아바타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 아바타는 Exosius Woolley가 제작했으며, 단편 영화/머시니마 ''Ouvroir the Movie by Chris Marker''에 처음 등장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마르케는 예술 딜러이자 출판인인 피터 블룸(Peter Blum)과 협력하여 뉴욕 소호 및 첼시 지역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작품은 2014년 57번가에 위치한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도 전시되었다. 이 시기에 진행된 주요 작업은 다음과 같다.[22]
- 사진 시리즈 인쇄물: ''PASSENGERS'', ''Koreans'', ''Crush Art'', ''Quelle heure est-elle?'', ''Staring Back''
- 포토그래비어 시리즈: ''After Dürer''
- 책: ''PASSENGERS''
- 디지털 프린트 (영화 포스터): ''Breathless'', ''Hiroshima Mon Amour'', ''Owl People'', ''Rin Tin Tin'' 등
- 비디오 설치 작품: ''Silent Movie'',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 (2009년 피터 블룸 갤러리 전시)
이 작품들은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2014, 2015),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MIT 리스트 시각 예술 센터 및 하버드 대학교 카펜터 시각 예술 센터, 모스크바 포토비엔날레, 프랑스 아를의 레콩트르 다르 드 라 포토그래피, 스위스 제네바 사진 센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웩스너 예술 센터, 뉴욕 현대 미술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등 세계 여러 기관에서 전시되었다. 2014년부터 크리스 마르케의 유산은 뉴욕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관리하고 있다.[23][24]
다음은 그의 주요 사진 작업 시리즈 목록이다.
| 시리즈명 | 제작 연도 |
|---|---|
| 한국인 (Koreans) | 1957 (2009년 인쇄) |
| 크러쉬 아트 (Crush Art) | 2003–2008 |
| "지금 몇 시?" (Quelle heure est-elle?) | 2004–2008 |
| PASSENGERS | 2008–2010 |
| 응시 (Staring Back) | 다양한 연도 |
5. 4. 디지털 프린트
크리스 마르케는 예술 딜러이자 출판인인 피터 블룸과 협력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이 중에는 영화 포스터를 디지털 프린트로 제작한 작업도 포함된다. 이 프린트들은 1995년에 구상되어 2009년에 인쇄되었다.[22] 대표적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Breathless'' (《숨 막히는》, 1995, 2009년 인쇄)
- ''Hiroshima Mon Amour'' (《히로시마 내 사랑》, 1995, 2009년 인쇄)
- ''Owl People'' (《올빼미 사람들》, 1995, 2009년 인쇄)
- ''Rin Tin Tin'' (《린틴틴》, 1995, 2009년 인쇄)
이 디지털 프린트들은 마르케의 다른 후기 작품들과 함께 2009년 뉴욕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처음 전시되었다.[22]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MIT 리스트 시각 예술 센터, 하버드 대학교 카펜터 시각 예술 센터, 모스크바 포토비엔날레, 프랑스 아를의 레콩트르 다르, 스위스 제네바의 사진 센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워커 아트 센터,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웩스너 예술 센터, 뉴욕 현대 미술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등 여러 곳에서 전시되었다.[23][24] 2014년부터 크리스 마르케의 유산 작품들은 뉴욕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관리하고 있다.[23][24]
5. 5. 비디오 설치
크리스 마르케는 ''해 맑은 눈''을 제작하면서 디지털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는 이후 그의 멀티미디어 및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이어졌다.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애플 II 컴퓨터용 애플소프트 BASIC으로 "Dialector"라는 초기 형태의 챗봇(원형 챗봇)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와 컴퓨터 간의 대화, 시 구절, 시청각 요소를 통합한 대화형 작품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버전 6은 플로피 디스크에서 복원되어 마르케의 허가를 받아 2015년에 온라인으로 에뮬레이션되기도 했다.[17][18]
디지털 기술에 대한 그의 탐구는 영화 ''레벨 파이브''(1996)와 대화형 멀티미디어 CD-ROM인 ''Immemory''(1998년 프랑스어 버전 퐁피두 센터 출시, 2008년 영어 버전 엑자트 체인지 출시) 제작으로 이어졌다.[19]
2005년, 마르케는 뉴욕시 현대 미술관(MoMA)을 위해 19분 길이의 멀티미디어 작품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영감을 받았다.[20]
마르케의 주요 비디오 설치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침묵 영화'' (Silent Movie, 1995)
- ''정오의 부엉이 서곡: 황폐한 사람들'' (Owls at Noon Prelude: The Hollow Men, 2005)
이 두 작품은 2009년 뉴욕의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22] 이후 이 작품들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MIT 리스트 시각 예술 센터, 하버드 대학교 카펜터 시각 예술 센터, 모스크바 포토비엔날레, 아를 레콩트르 다르, 제네바 사진 센터,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 콜럼버스 웩스너 예술 센터, 뉴욕 현대 미술관, 버클리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등 세계 여러 주요 미술 기관에서 전시되었다.[23][24]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마르케는 예술 딜러 피터 블룸과 협력하여 뉴욕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사진, 포토그래비어, 디지털 프린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였으며, 비디오 설치 작품 전시도 이 협력의 일환이었다.[22] 2014년부터 그의 유산 작품들은 뉴욕 피터 블룸 갤러리가 대리하고 있다.[23][24]
5. 6. 저서
wikitext| 연도 | 제목 | 출판 정보 | 비고 |
|---|---|---|---|
| 1949 | 깨끗한 마음 | 에디시옹 뒤 쇠유, 파리 | |
| 1952 | 지라도, 그 자신에 대하여 | 에디시옹 뒤 쇠유, 파리 | |
| 1961 | 코멘터리 I | 에디시옹 뒤 쇠유, 파리 | |
| 1962 | 한국 여성들 | 에디시옹 뒤 쇠유, 파리 | |
| 1967 | 코멘터리 II | 에디시옹 뒤 쇠유, 파리 | |
| 1982 | 고향을 떠나 | 에디시옹 에르셰, 파리 | |
| 1995 | 사일런트 무비 |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출판부 | |
| 1996 | 제테 시네-로망 | MIT 프레스, 케임브리지 | 브루스 모 디자인 (2쇄 2008) |
| 1997 | 이메모리 | 엑자크 체인지, 케임브리지 | CDROM (2쇄 2008) |
| 2007 | 응시 | MIT 프레스, 케임브리지 | |
| 2010 | 텔레비전의 내부 시간 | 오톨리스 그룹,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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